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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蘭汀學術賞

  • 작성일2019-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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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韓國語文會는 4월 26일(金), 蘭汀 南廣祐 박사가 국어국문학계에 끼친 공로를 기리기 위해 제정한 蘭汀學術賞의 제4회 시상식을 개최했다. 제4회 난정학술상 본상에는 金榮敏(延世大) 교수가, 우수상에는 孫有慶(서울大) 교수가 선정되어 수상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金榮敏 延世大學校 敎授]                                                    [孫有慶 서울大學校 敎授]


■ 金東鉉(本會 編輯人-이하 金東鉉) : 제4회 蘭汀學術賞을 수상하셨습니다. 수상하신 소감을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 金榮敏(延世大學校 敎授-이하 金榮敏) : 다른 것보다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이번에 수상 소식을 듣고, 제자들이 저 못지않게 이를 반가워하고 자랑스러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더 보람을 느낍니다.
■ 金東鉉 : 선생님의 저서나 논문들을 보면 주로 근대문학 관련 논저가 많습니다. 근대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 金榮敏 :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는 학문적 성과에 대한 義務感이 저를 누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진정한 공부, 자유로운 연구는 박사학위 논문을 쓴 이후부터였다고 생각합니다. 학위를 받은 후 하고 싶은 연구를 기획했는데, 그것이 近代小說史 연구였습니다. 제가 박사학위를 받은 80년대 중후반에는 근대문학사의 連續性과 斷絕性에 대한 논쟁이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스스로 얻고 싶었고, 그 답을 얻는 데 적어도 10년 정도는 투자해 보기로 했습니다. 박사학위 이후 정확히 10년 동안 오로지 그 문제에 集中했고 그 결과물로 나온 것이 『한국근대소설사』입니다.
■ 金東鉉 : 개화기 당시 <그리스도신문>에 실린 우화와 같은 문학자료가 한국 근대 서사문학을 대표하는 새로운 양식으로 정착되었으며, 이를 "서사적논설"이라고 명명하시면서 한국 근대소설의 출발이라는 주장을 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말씀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 金榮敏 :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까지 한국근대소설이 어디에 根源을 두고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학계에서 한참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한국 근대소설의 기원 가운데 하나가 조선 후기 野談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이런저런 변화를 거처 근대 초기의 단형서사문학 작품으로 정착한다는 것이 제 이론입니다. 저는 신소설 이전에 존재했던 신문 논설란 소재 寓話 작품의 문학사적 가치를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이들도 일종의 "近代小說"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을 소설이라 지칭하는 것에 대해 논란이 있었습니다. 고민하던 중 이들에게 소설이라는 이름 대신 "서사적논설"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게 되었습니다. 이는 논설란에 실린 이야기라는 의미이며, 지금은 이 용어를 普遍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 金東鉉 : 근대문학의 경우 글자 훼손 등으로 인한 기본적 접근에 있어 많은 어려움이 뒤따르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근대문학 특히, 희귀자료의 경우 체계적인 관리와 보존 계획의 필요성을 강조하셨는데 그 이유와 대안을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 金榮敏 : 근대자료를 연구하다 보면 損傷되어 가는 모습이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찢기고 부서지는 등 종이로 된 자료는 壽命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對案은 정부에서 예산을 들여 수집 보존하고 이를 디지털화하여 일반에게 공개해 활용도를 높이는 것입니다. 마침 개인적으로는 최근 한국근대문학관 설립 및 자료 구축 과정에 관여하고 있어서 이러한 생각을 일부나마 실제로 具現해 나가는 중입니다.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 金東鉉 : 선생님의 『한일 근대어문학 연구의 쟁점』 저서도 있습니다만, 근대문학을 논할 때 한·일간의 수수관계를 간과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근대문학 연구에 있어 연구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한일어문학의 차이가 있다면 말씀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 金榮敏 : 한국문학과 일본문학이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연구자가 둘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設定하고 接近할 것인가 하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보다 앞선 세대의 연구에서는 아무래도 일본으로부터의 流入에 중점을 두었다면, 우리 세대의 연구에서는 比較 및 交流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일본의 한국문학 연구자들과 協力하면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성과를 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金東鉉 : 선생님의 연구방향을 추적할 수 있는 단서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근대 작가들의 개별 작가론의 경우 저서에 재인식이라고 붙이셨습니다. 이광수, 이상, 임화 등을 바라보는 선생님만의 시선에 대해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 金榮敏 : 재인식은 매월 1회씩 만나 함께 공부하는 "문학과사상연구회"의 시리즈물입니다. 제 연구의 특징은 어떤 작가나 작품을 볼 때 그것을 개별 작가, 개별 작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文學史 속에서 어떤 位相이 있는 것인가, 즉 역사적인 흐름 속에서 어떤 자리에 놓여 있는가를 보려고 합니다. 역사 속에서 이 작가는 어떤 역할을 했는지, 문학사의 흐름 속에서 이 작품은 어떤 자리에 있는지 등 전후맥락을 보려고 합니다. 또한, 國文學과 國語學 연구를 함께 할 수 있는가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 중에 文體論이 있습니다. 세세하게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李光洙(1892~1950)의 문체가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대한 연구를 들 수 있습니다. 이광수가 어떤 때에는 國漢文을 쓰고, 어떤 때는 한글을 쓰는데 그게 단순히 본인 기분에 따라 임의로 결정된 것이 아니라 어떤 新聞, 雜誌에 발표하느냐에 따라 좌우되었습니다. 작가가 자기의 문장을 결정할 때 상당 부분 독자를 의식했고, 자신의 작품이 어떤 매체를 통해 발표되는지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 金東鉉 : 선생님께 많은 영향을 주셨던 은사님과의 기억을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 金榮敏 : 앞에서 말한 "문학과사상연구회"는 恩師님이신 李善榮 교수님의 停年退任 무렵 만들어진 제자들의 공부 모임입니다. 선생님 퇴임이후 20여 년 간 매달 1번씩 만나 여기서 각자 논문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최근 몇 년 전까지 함께 하셨습니다.
■ 金東鉉 : 교수님의 좌우명이나 인생철학이 궁금합니다.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 金榮敏 : 제 소설사 연구가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될 수 있었던 계기의 하나는 그동안 이른바 소설의 範疇에도 들지 못했던 근대 초기 단형서사에 대한 연구에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동안 버려졌던, 혹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소소한 것들 이른바 非主流가 지닌 가치에 대한 존중이 새로운 길을 가게 하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 金東鉉 : 근대문학을 연구하고 있는 젊은 연구자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 金榮敏 : 학문 연구의 결실은 時間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입니다. 자료에 바탕을 둔 연구의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제가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학문의 목적 가운데 하나가 어렵고 복잡한 사실들을 쉽게 정리해 독자에게 전달하는 데 있다는 점입니다. 적어도 그 반대의 일, 즉 쉬운 사실을 어려운 용어로 포장해 전달하는 일은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 金東鉉 : 제4회 난정학술상을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수상 소감 부탁드립니다.
○ 孫有慶(서울大學校 敎授-이하 孫有慶) : 제가 2017년 여름부터 2018년 여름까지 미국 버클리로 연구년을 다녀왔습니다. 연구년을 보내는 동안, 긴 호흡으로 話頭를 가지고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상을 받게 되어 정말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연구년 이후 새로 2기 연구생활로 들어간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좋은 계기, 너무나 감사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 金東鉉 : 선생님의 일련의 문학을 바라보는 시각에 다름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문학연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 孫有慶 : 제가 植民地時期 文學을 공부할 때, 잡지와 신문기사, 그 중에서도 시나 소설 같은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작품을 최대한 살아있는 것으로 느껴보려고 했습니다. 텍스트를 제 관심사나 제 마음 속에 불러오려고 노력하면서 읽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저는 어떤 텍스트를 읽더라도 그 텍스트 내부의 騷音을 듣는 것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물론 작가의 의도를 밝히고 텍스트의 의미를 추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不和音", 즉 텍스트 내부에서 화합하지 않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의 의도와 작가의 무의식이 충돌을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작가의 기질과 성향, 추구했던 이데올로기 등에 따라 작품이 하나로 읽히지 않기 때문에 소란스러운 잡음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것을 찾아서 듣고, 밝혀내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비평가인 林和(1908~1953)가 1938년도에 「의도와 작품의 낙차와 비평」이라는 글에서 "작가들이 수행하는 言語的 實踐에서 지성과 감성, 또는 이데올로기와 감정이 충돌하면서 빚어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결국 批評家이고, 硏究者"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문학을 계속 공부하는 게 저한테 잘 맞고, 재밌습니다.
■ 金東鉉 : 선생님의 저서 『슬픈 사회주의자』 등의 연구들을 보면 월북문인들의 미학적 실천의 근거를 찾기 위해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한 시각의 출발점에 대해 말씀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 孫有慶 : 출발점이라고 한다면 김수영의 말마따나 왜 "알맹이는 북으로 갔는가"가 궁금했습니다. 『프로문학의 감성 구조』에서 시도했던 프로작가에 대한 다시 읽기가, 결국 "월북"이라는 행보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프로작가들이 정말 꿈꾸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것은 소위 다른 "진영"에 있는 문인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김남천, 송영, 지하련 등의 사회주의 계열의 작가들을 식민지시대의 모더니스트로 불렸던 박태원, 이태준, 안회남 등과 맞세워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최근 1970~1980년대에도 마찬가지인데 중심을 이동하다 보면 다르게 새롭게 보이는 것이 있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 金東鉉 : 선생님의 근간에 이루어진 연구 경향을 보면 순수문학이 아닌 참여문학에 대한 연구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경향들은 선생님의 근대문학 연구의 접근방법이었던 "감정이나 동정"의 키워드로 70~80년대 문학 현장에서 논의되었던 작가들이나 지식인들의 내면화의 문제를 계보학적으로 살펴보기 위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에 대해 말씀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 孫有慶 : 각 시대 최고의 지식인 문인들과 겨루어보려는 欲望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식민, 전쟁, 분단의 한국 현대사가 지식인의 사회 "참여"를 당연시하거나 북돋아 온 측면이 있어서 당대 엘리트들이 맑시스트, 리얼리스트였던 데 큰 까닭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시대에 가장 尖端에 있었던 분들, 가장 치열하게 사고하고 날카로운 글쓰기를 했던 문인들, 지식인들의 행보를 뒤쫓았던 것 같습니다. 또, 그때 그곳의 입장에 서야 잘 보이는 지금, 이곳의 풍경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家父長制와 資本主義가 더욱 세련된 방식으로 일상을 물들이고 있다고 판단했고, 나 자신의 입장을 잘 보기 위해서는 女性主義와 社會主義에 대한 공부를 놓을 수 없습니다. 비판적으로 되돌아보려고 하는 의도도 있습니다. 여러 논의들이 최종적으로 제시하는 전망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분석이 보이고 있는 밀도, 분석력 자체를 지금의 관점에서 다시 재구성해보고 싶습니다. 그 분석력을 빌려서 우리 입장에서 또 새로운 전망을 볼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 金東鉉 : 한 인터뷰에서 한국의 수전 손택이 되고 싶다고 하셨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일련의 기고글이나 행보를 추적해보면 행동하는 지식인의 모습에서 그 유사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만 문학을 해석하고 재의미화 하는 과정에는 약간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점에 대해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 孫有慶 : 행동하는 지식인이라는 표현을 하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다만 글 쓰는 행위의 의미에 대해서는 늘 고민을 합니다. 문학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입장에서 제 자신이 그래도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생각해 보면 역시 그것은 글쓰기인 것 같습니다. 저는 무언가를 주장하고 직접 바꾸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런 일을 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는 것이 바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 金東鉉 : 새로운 지식공동체인 "수유+너머"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시기에 대한 기억을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 孫有慶 : 박사과정 중 우연한 계기로 다니게 된 연구 공간 "수유+너머"는 함께 공부하는 즐거움을 알게 해 준 곳입니다. 그전에 저는 ○ ○ 책 3개월 만에 읽기라든가 ○ ○ 책 번역을 위한 스터디처럼 무척 "目的指向的" 스터디를 하곤 했어요. 그렇지만 "수유+너머"에서는 별다른 목적 없이도 그저 읽고 쓰는 게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경험을 했습니다. 일주일에 세미나만 7~8개씩 했는데, 短期的으로 특별한 목적 없이 책 읽고 토론하고 글 쓰는 일상을 반복하면서 공부의 기본기랄까, 그런 것을 닦을 수 있었습니다.
■ 金東鉉 : 선생님께 많은 영향을 주셨던 은사님과의 기억을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 孫有慶 : 제가 어떤 책 서문에서도 썼지만 제 지도교수님이신 조남현 선생님은 燈臺 같은 분입니다. 길을 잃고 어떻게 해야 하나 방황하고 있으면 멀리서 반짝반짝하면서 길을 가리켜주는 등대 말입니다. 문학 이외에는 그 어떤 것에도 곁을 주지 않으시고 곁눈질 안 하셨던 徹頭徹尾한 삶의 태도에 제가 알게 모르게 큰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 金東鉉 : 교수님의 좌우명이나 인생철학이 궁금합니다.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 孫有慶 : 제가 수유연구실에 다닐 때, 刻鵠類鶩이라는 사자성어를 좋아한다는 짧은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각곡유목"은 고니를 조각하려다 집오리를 조각하게 되었다는 실패의 이야기지만, 그것을 다르게 뜻풀이하면 고니를 조각하다가 실패하더라도 집오리와 비슷하게 된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저도 通俗的으로 이야기했을 때 포부 자체는 무조건 커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래야 잘 안되더라도 집오리 정도는 얻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 金東鉉 : 근현대문학을 연구하고 있는 젊은 연구자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 孫有慶 : 자기 중심은 지키지만 孤立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삶도 그렇고 학문도 그렇습니다. 삶의 리듬이 철저히 혼자여야 할 때와 같이 있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리듬을 놓치면 누구랑 같이 있어야 할 시점인데 너무 고립되어서 계속 혼자이거나, 혼자 무언가에 몰두해야 하는데 리듬을 잘못타서 계속 어울리기만 하게 됩니다. 이 리듬은 자기 자신 밖에는 모른다고 생각하거든요. 자신의 중심을 가지고 내가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철저히 혼자 몰두할 때인지, 최대한 나를 개방해서 같이 공부를 해야 할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중심은 가지되 고립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지금 연구자들에게 버틸 수 있는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