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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蘭汀學術賞

  • 작성일2020-06-30
  • 조회수1029

제5회 蘭汀學術賞 수상자 인터뷰

(社)韓國語文會는 지난 6월 26일(金), 蘭汀 南廣祐 박사가 국어국문학계에 끼친 공로를 기리기 위해 제정한 蘭汀學術賞의 제5회 시상식을 개최했다. 제5회 난정학술상 本賞에는 李丞宰(서울大) 교수가, 優秀賞에는 李庭勳(西江大) 교수가 선정되었으며, 사전에 수상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李丞宰 서울大學校 敎授]                         [李庭勳 西江大學校 敎授]


■金東鉉(本會 編輯人-이하 金東鉉) : 먼저 난정학술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수상하신 소감을 부탁드립니다.
□李丞宰(서울大學校 敎授-이하 李丞宰) : 요새 유행하는 말에 “네가 왜 거기서 나와?”라는 말이 있습니다. ‘낄끼빠빠’라는 유행어가 있듯이 “낄 때에 끼고 빠질 때에 빠져야” 하지요. 수상 대상자에서 빠져도 되지만, 고마운 마음으로 상을 받기로 했습니다. 시상을 주관하는 한국어문회가 한자・한문의 연구와 교육을 강조하는 학회이고, 제가 마침 고대 한자음 연구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사위원 여러분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립니다.
 
■金東鉉 : 선생님께서 역사언어학에 관심을 가지시게 된 계기를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李丞宰 : 저의 선생님은 대부분 ‘한국어의 역사’를 연구 주제로 삼았습니다. 이 연구 전통을 이어받으려 했지만, 스스로 능력 부족을 통감하고, 자료 독해가 어렵거나 자료를 폭넓게 섭렵해야 하는 분야를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구결자・이두자 등의 글꼴에 관심이 많음을 스스로 깨닫고, 훈민정음 창제 이전의 한국어를 연구 주제로 삼게 되었습니다. 이 분야는 뛰어난 분들이 거의 거들떠보지 않아 경쟁할 필요가 거의 없어서 도피처로도 안성맞춤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간다”는 취향이 생겼습니다.

■金東鉉 : 선생님께서는 목간에 기록된 고대 한국어를 통해 고대 국어 연구에 중요한 기본 사료를 발굴하시고 새롭게 추가하는 연구에 매진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목간에 관심을 가지시게 된 동기와 목간의 중요성을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李丞宰 : 자형 판독의 성패가 바로 연구의 성패로 이어지는 분야라는 점이 제 호기심을 끌었습니다. 중국의 敦煌本돈황본, 일본의 고대 寫經, 석가탑에서 나온 重修文書 등을 통하여 꾸준히 자형 공부를 해고, 늦게나마 목간의 자형 판독에 뛰어들었습니다. 목간은 금석문・고문서와 더불어 1차 실물자료이기 때문에 제작 당시의 자형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따라서 목간은 서예사의 기술, 문헌사료 기사의 확인, 언어사의 재구 등에서 필수적인 자료입니다. 그런데 학자들의 자형 판독이 서로 일치하지 않아서, 다양한 학설이 나올 때가 많습니다. 이 자형 판독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목간 연구에 뛰어들었고, 그 결과로 󰡔木簡에 기록된 古代 韓國語󰡕(2017, 일조각)를 집필할 수 있었습니다.

■金東鉉 : 전북 익산 미륵사지 목간에 기록된 백제의 數詞수사를 통해 신라와 백제의 두 나라의 언어가 유사했다는 주장을 하셨는데 그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李丞宰 : 제가 본격적으로 목간 연구에 뛰어들게 된 것은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수사 목간을 해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어에는 ‘하릅(1), 이듭/이듬(2), 사릅(3), 나릅(4), 다습(5), …’ 계통의 수사가 있습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의 ‘하룻’은 ‘하릅’의 후대형이고 이 속담에서는 1년생을 뜻합니다. 그런데 ‘사릅(3)’과 ‘다습(5)’이 수사 목간에서는 ‘新台𢀳(*새)’과 ‘刀士𢀳(*다ᄉᆞᆸ)’으로 기록되고 신라 목간에서는 ‘三𢀳(*사ᄃᆞᆸ)’(경주 월지)과 ‘丨彡(*다ᄉᆞᆷ)’(함안 성산산성)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익산 미륵사지 목간의 수사와 경주・함안 목간의 수사가 동일 계통임을 알 수 있습니다. 수사는 특히 언어 계통론에서 결정적인 자료이므로, 이 수사의 일치로 백제어와 신라어의 계통이 동일하다는 가설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문헌자료와 달리 목간은 출토지가 분명하기 때문에 계통론 연구뿐만 아니라 방언 연구에서도 결정적일 때가 많습니다. 현재의 전라도 방언에서는 65를 ‘예순 다섯’이라고 하지만, 경상도에서는 ‘육십 다섯’이라고 하지요? 이 ‘육십 다섯’이 함안 성산산성 목간에서 ‘六十𢀳丨彡(육십다ᄉᆞᆷ)’으로 기록되었습니다.

■金東鉉 : 고구려어를 대상으로 삼아 음운체계를 세우셨는데, 선생님의 한자음 연구에 대해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李丞宰 : 버나드 칼그렌이 한어 上古音의 자음에 /t, th, d, dh/의 네 계열이 있다고 했으므로, 어떤 분이 馬韓語의 한자음에도 유성무기음 /d/뿐만 아니라 유성유기음 /dh/도 있었다고 기술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영어의 순치 마찰음 /f, v/를 한국어에서 차용할 때에 /f, v/ 그대로 수용했다고 기술하는 방법과 같습니다. 이처럼 기존의 고대 한자음 연구는 한어 상고음 또는 中古音 음가를 한국 한자음에 그대로 대입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순치 마찰음 /f, v/를 한국어에서는 양순 파열음 /ph(ㅍ), p(ㅂ)/로 대체하여 수용하므로 이 외래 음가 대입법은 옳지 않습니다. 한자음의 수용도 차용음운론의 일종이므로, 마찰음 /f/와 /v/를 각각 파열음 /ㅍ/과 /ㅂ/으로 대체하여 수용한다고 기술해야 정확합니다.
  저는 表音字 전체 집합을 구한 다음에, 상보적 분포의 여부와 최소대립 쌍의 유무를 검토하여 이 대체 수용 현상을 철저히 찾아냈습니다. 이 점에서 󰡔漢字音으로 본 고구려어의 음운체계󰡕(2016, 일조각)는 기존의 연구 방법과 크게 차이가 납니다. 이 책에서 성모의 분포분석표를 작성하여 성모의 최소대립 쌍을 찾아내는 방법을 제시했고, 운모의 분포분석표를 작성하여 운모의 최소대립 쌍을 찾아내는 방법도 처음으로 제시했습니다. 이것은 한자음의 보편적 분석 방법론 하나를 새로 개발한 것이므로, 고대 중국이나 고대 일본의 한자음 연구에도 이것을 바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前期 中古音 - 世說新語 對話文 用字의 音韻對立음운대립󰡕(2018, 일조각)은 5세기 전반기의 중국 한어음에 적용한 것이고, 󰡔上代 日本語의 音韻體系 - 萬葉假名의 借用音韻論차용음운론󰡕(2020 근간, 일조각)은 8세기 일본 가요의 만요가나에 적용한 것입니다. 이들을 통하여 제가 개발한 연구 방법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 보았습니다.

■金東鉉 : 선생님께 많은 영향을 주셨던 은사님과의 기억을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李丞宰 : 이런 질문에 지도 선생님 한 분만 거명할 때가 많은데, 저는 특별히 어느 선생님의 제자라고 스스로를 한정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 점에서는 그야말로 괴상한 학생이었습니다. 국어학을 전공할까 하여 제가 찾아뵙고 처음으로 상담한 것은 이병근 선생님이었습니다. “지금부터 국어학 공부를 시작해도 늦지 않을까요?”라고 질문한 것이 학부 3학년 1학기 때의 일입니다. 대학원 박사과정 때에 구역인왕경 구결을 읽어보고 싶다고 했더니 남풍현 선생님은 그 자리에서 복사본 한 부를 주셨습니다. 학부 때 지도교수 안병희 선생님, 석사 과정 때의 이기문 선생님, 박사과정의 김완진 선생님께서 암암리에 항상 저를 지원해 주셨습니다. 이기문 선생님은 일당백의 기개로 공부하라 하셨고, 김완진 선생님은 병석에 누워 계시면서도 제 손을 덥석 잡아 주셨습니다. 안병희 선생님은 1년 동안 일본에 체류할 기회를 마련해 주셨고, 고영근 선생님은 저를 어느 학술지의 편집위원으로 부르셨으며, 이익섭 선생님은 저를 국립국어연구원의 연구부장 자리에 앉히셨습니다. 심악 이숭녕 선생님과 강신항 선생님은 제 책을 받아 보시고 항상 격려의 편지를 보내 주셨습니다. 선생님 복이 이렇게 많을 수 있을까요?
  여러 선생님 못지않게 영향을 많이 준 것은 또래의 동학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젊은 시절에 곽충구, 송철의, 이남순, 김창섭, 한영균 등의 여러 선후배와 어울려서 공부한 것이 스스로를 가다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 주변에 권재일, 김주원, 이현희 등등 뛰어난 동학이 많았다는 점도 저로서는 커다란 행운이었습니다.

■金東鉉 : 언어학 특히 역사언어학을 연구하고 있는 젊은 연구자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李丞宰 : 한국에서 역사언어학을 전공하는 연구자에게는 동양 전체로 시야를 넓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한국의 독자적 연구 성과를 제시하면서 다른 국가의 연구에 대한 논쟁에 끼어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타국의 학계를 그대로 모방하거나 감투를 탐하기 보다는 세계적으로 통할 수 있는 참신한 방법론이나 독창적 학설을 세우는 데에 연구 목표를 두시기를 바랍니다. 젊은이라면 모름지기 포부가 커야 하고 일당백의 기개가 있어야 합니다.


李庭勳(西江大學校 敎授)
■金東鉉 : 제5회 난정학술상을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수상 소감 부탁드립니다.
□李庭勳(西江大學校 敎授-이하 李庭勳) : 뜻밖의 격려에 감사한 마음이 앞서면서도, 마음속에 떠오르는 선생님들을 생각하면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해 오던 것을 더 열심히, 꾸준히 하라는 말씀으로 새겨 더 나은 成果를 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金東鉉 : 선생님께서 국어학 연구 분야 중 통사론에 관심을 가지시게 된 계기를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李庭勳 : 국어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에 대해 몇 분 선생님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음운론과 국어사에 대한 興味를 갖게 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여서 처음에는 음운론과 국어사에 끌렸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 어느새 음운론이 아니라 통사론을 하고 있고, 국어사가 아니라 현대국어를 다루고 있더군요. 적잖이 변한 셈인데 왜 이렇게 변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되돌아보면 논리적, 이론적 분석에 대한 매력이 계기가 된 듯합니다. 국어학의 다른 영역도 논리적, 이론적 분석이 가능하지만, 특히 통사론은 현상이  매우 풍부하고, 더불어 현대국어는 여러 가지를 검증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현대국어 통사론 연구자가 된 듯합니다. 또 공부했던 서강대학교의 학풍에도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金東鉉 : 대부분의 독자들은 통사론에 익숙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기능적 통사론과 형식적 통사론이 무엇인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통사론의 역할이나 목적에 대해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李庭勳 : 일반적으로 合意할 수 있는 수준에서 말씀드리면, 통사론은 기본적인 언어 단위를 토대로 복합적인 언어 단위를 형성하는 규칙 체계입니다. 이 언급에서 규칙 체계는 규칙, 원리, 조건, 제약 등을 아우르는 것이고, ‘기본적인 언어 단위’와 ‘복합적인 언어 단위’는 일반적으로는 각각 단어와 문장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통사론의 ‘기본적인 언어단위’를 단어로 간주하고 ‘복합적인 언어 단위’를 문장으로 간주하는 것은 잠정적인 조치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예를 들어 형태소(기본)가 모여 복합어(복합)가 되고, 음소(기본)가 모여 음절(복합)이 되는 것도 통사론으로 간주할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문장(기본)이 모여 하나의 단위, 예를 들어 문단(복합)이 이루지는 것도 통사론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통사론의 영역이 확장될 수 있는 셈인데, 이러한 확장이 성공적이려면 이에 수반되는 규칙 체계가 잘 갖추어져야 합니다. 물론 규칙 체계가 잘 꾸려지지 않으면 음운론, 형태론, 통사론, 담화론 식의 여러 분야가 병존해야 합니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연구는 수렴과 발산 둘 다가 서로 견제하면서 진행되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여러 현상을 통사론의 테두리로 포섭하려는 노력과 위에서 列擧한 각 분야의 독자성을 면밀히 탐구하는 노력이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통사론을 이렇게 이해하면 기능적 통사론과 형식적 통사론의 구분은, 규칙 체계의 성격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형식적 통사론의 규칙 체계는 의미나 용법 등과 무관한 기호 조작(symbol manipulation)의 성격을 띠는 데 비해, 기능적 통사론의 규칙 체계는 의미나 용법과 직결 됩니다. 예를 들어 A와 B가 결합해서 C를 형성하는 경우, 형식적 통사론은 ‘C → A B’(C는 A와 B로 구성됨. A와 B가 C를 형성함)와 같은 규칙을 두지만, 기능적 통사론은 이 규칙의 동기를 의미와 용법에서 구함으로써 사실상 ‘C → A B’와 같은 규칙은 없는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실제 언어 현상을 이해하는 데에는 둘 다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문장구조는 기본적으로 도상성을 띠는데, 즉 의미적으로 긴밀히 관련된 것들이 서로 결합하면서 문장구조가 형성되므로 기능주의와 통합니다. 하지만 의미적 차이와 관련짓기 어려운 통사현상은 형식주의를 지지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어는 ‘주어, 목적어, 술어’ 어순이고 영어는 ‘주어, 술어, 목적어’ 어순인데 이러한 차이는 형식주의로는 포착할 수 있지만 기능주의로는 포착하기 곤란합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와 ‘I love you’의 의미가 다르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또 의미는 같아도 ‘너는 누구를 사랑하니?’, ‘Whom do you love?’에서 보듯이 문장의 꼴은 다른바 이 역시 형식주의를 지지합니다. 단순화하면, 의미가 다름에 따라 언어 형식의 꼴도 달라지면 기능주의가 유리하고, 의미가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언어 형식의 꼴이 다르면 형식주의가 유리합니다. 개인적으론 자료를 분석할 때 일단은 형식주의로 분석하고, 이후 분석 결과 중 기능주의에 해당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것이 꽤 유용합니다.

■金東鉉 : 일반 言衆들이 우리말이나 문장을 사용하면서 자주 오류를 보이는 예가 있다면 말씀해주시고 그 오류의 원인에 대해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李庭勳 : 주어와 술어의 호응이 이상하거나 경어법 사용이 적절치 않은 경우를 심심찮게 만날 수 있습니다. 공지문이나 게시판에 게시된 글, 라디오나 텔레비전 뉴스에서 어휘 사용이 다소 이상한 경우를 보고 듣기도 합니다. 부적절한 접속 표현도 아주 흔하게 접하게 되는데, 얼마 전에는 식당에서 ‘음식을 담으실 때에는 마스크 착용 및 대화를 자제해 주세요.’라는 안내문을 보고, 마스크를 쓰지 말라는 건가 하면서 웃은 적도 있습니다. 대개 어휘의 의미와 용법에 대한 지식, 한국어 문법에 대한 기초 지식, 기본적인 글쓰기 능력 등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서 그렇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글을 여러 번 읽고, 가끔 베끼기도 하는 경험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요즘은 여러 가지 글을 빠르게 읽는 데만 너무 집중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 다만, 오류와 관련하여, 주술 관계가 맞지 않거나 경어법 사용이 올바르지 않다고 판단되는 경우 중 일부는 재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말은 소위 주제어가 발달해서 주술 관계로는 포착이 안 되는 주제어가 나타날 수 있고, 박사논문 쓸 때도 꽤나 고민했던 문제이기도 한데, 주제어가 경어법의 대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적으로 ‘커피 나오셨습니다’와 같은 표현을 잘못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優勢한 듯한데, ‘당신은’ 정도의 주제어를 상정하면 주제어와 ‘-으시-’가 호응하는 사례로 해석할 수 있어서 잘못된 표현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어의 특징이 잘 드러난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오류를 판단할 때 적용하는 기준이 과연 한국어에 적합한 것인가를 꼼꼼히 따져야 합니다.
 
■金東鉉 : 선생님께 많은 영향을 주셨던 은사님과의 기억을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李庭勳 : 제게 국어학을 가르쳐주신 정연찬, 이승욱, 서정목 선생님이십니다. 정연찬 선생님의 음운론, 이승욱 선생님의 국어사, 서정목 선생님의 통사론, 원전강독 등의 강의는 확실히 제게 지침과 방향을 제시하였습니다. 대학원에 입학할 즈음 정연찬, 이승욱 선생님께서는 은퇴하셔서 아쉽게도 두 분 선생님들로부터 배울 기회는 많이 갖지 못했지만, 서정목 선생님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 서정목 선생님이 글, 말씀, 행동으로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신 덕에 책을 읽을 때는 글자 하나하나의 의미와 행간의 의미까지 파악하려는 자세를 갖게 되었고, 이해에 머물지 않고 미흡한 것을 찾아 채우고 새로운 것을 모색하는 것이 진짜라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으며, 자유롭게 생각하는 훈련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金東鉉 : 교수님의 좌우명이나 인생철학이 궁금합니다.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李庭勳 : 모든 일을 할 때 ‘해야 할 것,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을 고려하고, 가급적 이 세 가지를 충족하는 것을 찾아서 하려고 합니다. 특히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 것이거나 해야 할 것이 아니면 경계하고, 해야 하는 것이면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습니다. 하기로 정한 것이나 맡은 일은 책임지려고 노력합니다. 이러기 위해서 言辯이나 교양을 방패삼아 모호한 태도를 취하며 책임에서 회피하는 자세는 피하려고 하고, 시비는 분명히 가리지만, 공염불 외는 거창한 말이나 패를 가르는 언사도 피합니다. 자리가 아니라 일을 탐내고, 교언영색하지 말라는 말씀은 어릴 때부터 듣고 새기고 있습니다.

■金東鉉 : 통사론을 연구하고 있는 젊은 연구자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李庭勳 : 자신의 분석과 해석의 장단점을 찾아내 장점을 키우고 단점을 개선하기 위해서 이론이든 자료든 자신의 눈과 손으로 직접 찾아야 하므로, 매체 전반을 통해 접하는 일상 언어 표현을 가볍게 분석하면 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해석 과정에서 논증과 선언을 분명히 구분할 것과 남의 견해는 지속적으로 수정되고 보완될 수 있으므로 존중하기를 권합니다. 끝으로, 이질적인 논의를 뒤죽박죽 섞는 것을 경계하고, 통합적인 시각을 갖추려고 노력하여 복잡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정연한 논리를 마련하기를 권합니다. 공부는 일정한 테두리 내의 것을 책임지는 것에서 출발해서 그것을 확장하는 식으로 해야지, 처음부터 전부를 포괄하겠다는 꿈만 꾸면 곤란합니다. 차분하고 꼼꼼하게 스스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