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문초록 |
심규식, 2023, 17세기 초 문학에 나타나는 국가 정체성 공론화의 두 계보, 어문연<br>
구, 198 : 109~148 본고는 광해군 시대(1608~1623) 관각(館閣)이 국가 정체성<br>
을 확립하기 위해 17세기 초의 문인 문화를 수용하여 금석문(金石文)을 포함한 관<br>
각문학 작품, 서적(書籍), 전례(典禮) 등을 통해 명문화한 양상을 추적함으로써,<br>
조선시대에 국가가 문화 주체로서 국가적 의제를 다룬 방식의 일단(一端)을 살핀<br>
다. 이때, 당쟁으로 인한 권력 이동과 관련 없이 비교적 보편적 인식에 기반을 두<br>
고 전개된 두 가지 활동에 주목한다. 첫째로 기자(箕子)의 문화적 정체성 규정에<br>
대해서는, 임진왜란(壬辰倭亂) 이후 기자의 불신(不臣) 논리와 기전제(箕田制)의<br>
별도 계통설이 문인들에 의해 정밀화된 이후 「숭인전비(崇仁殿碑)」, 기전고(箕田<br>
攷) 등으로 공식화되었음을 밝힌다. 둘째로 왕실 발상지로서의 관북(關北) 정비<br>
사업에 대해서는, 관각문인들의 문학에서 체험을 바탕으로 풍패지향(豐沛之鄕)의<br>
성격을 강조한 작품이 크게 증가한 이후 「성조잠저하마비(聖祖潛邸下馬碑)」를 비<br>
롯한 왕실의 금석문과 함흥본궁(咸興本宮)의 전례가 정비된 점에 주목한다 |
| 핵심어 |
기자, 관북, 함흥, 정전법, 관각문학, 광해군, 이정귀, 한백겸, 한준겸, 「숭인전비」 |